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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일기

David Bowie- Space Oddity

‘글램록의 대부'
‘가수 작곡자 영화배우’
중년과 노년에 더 섹시했던 데이빗 보위
그는 18개월 간의 긴 암투병 끝에 2016년 1월 10일 사망
그는 많은 명곡과 명반을 남겨두고 영원한 별이 되었다.
​​​


그가 남긴 최고의 명곡은 단연
누구나 들으면 아는 “Space Oddity”일 것이다.
1969년 미국의 달 착륙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데이빗 보위는 두번째 음반 Man of Words, Man of Music(또는 space oddity로 음반타이틀이 되있기도 하다. 후자가 한 곡 더 수록 되어 있다.)을 발표했는데 수록 곡인 Space Oddity는 음악사의 한 확을 긋는 곡에 되었다.
1969년에 발매한 이 음반은 지금 들어도 리듬 편곡 모두 명곡이자 독특함과 세련미를 자랑한다.
여기에 그의 늘어지는듯, 툭툭 던지는, 터지면서도 감기고, 찌르는듯 하면서도 감미로운 독특한 창법이 더해지면서 명반 위에 명반, 명곡 위의 명곡을 만들어 낸다.

1969년 무렵은 비틀즈를 시작으로 영국록음악이 미국을 강타하면서 세계 락음악의 르네상스를 열기 시작한 시기이다.
여기에 핑크플로이드, 킹크림슨, 크림, 제네시스, 제스로툴, 에멀슨레이크앤파머, 무기블루스 등 프로그레시브락(이하 프록)이 락음락의 중심에서 음악세계를 양분할 때였다.
데이빗 보위의 음반 space oddity는 이 모두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데이빗 보위가 보여준 파격과 외양만으로 그를 그램록으로 가둔 분류와 평가는 그의 성과와 영향에 비춰볼 때 부당하다.
그의 음악은 프록, 심포니락, 스페이스락, 사이키델릭 등 당시 거의 모든 음악적 시도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틀즈, 핑크플로이드 등 밴드로 이룩한 도전과 성를 그는 홀로 그 길을 가고 경지에 으르렀다는 점에서 그의 창조성과 업적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의 재즈음반을 들으며 음악과 가까워졌고 13살에 섹스폰을 배우고 10대에 밴드생활과 음반 세션을 시작했다.
1947년 생인 그는 20살에 자기곡을 싱글발매를 하고 1969년에 기념비적인 본 음반을 발매한다.
그리고 2016년 일흔의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가 노래하던 우주의 시공간으로 떠났다.

이 음반의 매력은 첫곡인 space oddity 한곡에만 있지 않다.
Cygnet committee는 영국의 전설적인 프록 밴드 T2가 재주를 연주하는 상상을 일으킨다.(T2가 나중에 나온 밴드이다.)
사실 첫곡 space oddity부터 마지막 곡인 memory of a free festival까지 허투루 만들어진 곡이 없다.
그래서 전곡을 여유있게 듣기를 권한다.

데이빗 보위의 또다른 매력은
음반을 들을수록 그 매력이 커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만그만하게 들리던 곡들도 음반을 돌릴 때마다 새롭게 귀를 사로잡는다.

점심식사 이후 노곤할 때
잠시 음악과 함께 우주여행을~~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kYgfG7NdKRrwMqY6v8ma_wfGW2Ai3x2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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